자극적 장면이 반복될수록 진짜 설렘은 사라지는 신경학적 이유.

요즘은 정말 많은 연애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초반엔 출연자들의 감정선에 빠져들어 몰입하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중반을 넘기면 흥미가 떨어지고 끝까지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왜 그럴까요? 오늘은 바로 이런 '자극의 피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반복되는 자극 속에서 우리의 설렘이 점점 무뎌지는 이유,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뇌과학적 원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자극적 장면이 반복될수록 진짜 설렘은 왜 사라질까?

 

1. 도파민의 메커니즘: 설렘의 생물학적 정체

 

대한민국에서 유행하는 연애 예능, 예컨대 《하트시그널》, 《나는 솔로》, 《환승연애》, 《러브캐처》 등을 보면 우리는 한 가지 공통된 감정 흐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설렘'이라는 감정입니다. 출연자들은 서로를 탐색하며 가슴 뛰는 순간을 경험하고,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보며 대리 설렘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설렘이라는 감정은 결코 낭만적인 환상만은 아닙니다.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설렘은 뇌의 보상회로에서 분비되는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도파민은 뇌의 **복측 피개 영역(VTA)**에서 생성되어, **측좌 피질(NAc)**로 전달되며 강한 쾌감과 기대감을 유발합니다.

이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린다’, ‘기대된다’는 감정을 느낄 때 활성화되며, 불확실성과 기대가 클수록 도파민의 분비는 더욱 강해집니다. 그래서 첫 만남, 우연한 눈맞춤, 감춰진 감정의 고백 같은 요소들은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해 강한 설렘을 유도합니다. 바로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연애 예능은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 반전 상황, 경쟁 구도를 삽입하며 시청자의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설렘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분비가 반복적이고 과도하게 일어날 경우, 우리의 뇌는 점점 자극에 무뎌지는 '내성(Tolerance)' 상태로 접어듭니다.

2. 감정의 내성: 반복된 도파민 자극의 역효과

연애 예능을 보다 보면 처음에는 흥미롭고 몰입되던 감정이, 시즌이 거듭될수록 혹은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늘어날수록 점점 덜 설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왜일까요? 이는 바로 도파민 수용체의 민감도 감소, 즉 감정적 내성에 해당하는 신경학적 반응입니다.

뇌는 동일한 자극이 반복될 경우, 그것을 예측 가능한 정보로 처리하고 더 이상 ‘새롭다’고 인식하지 않게 됩니다. 뇌의 보상 회로는 **예상치 못한 보상(unexpected reward)**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극이 익숙해질수록 도파민 분비량이 감소하고 설렘의 강도도 줄어듭니다. 이러한 현상을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 또는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 부르는데, 이는 연애 감정뿐 아니라 음식, 음악, 게임 등 다양한 자극적 경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즉, 설렘은 단순히 반복된 자극으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복된 자극은 감정의 깊이를 마모시키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는 감정 중독 상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환승연애》나 《체인지 데이즈》처럼 관계의 파열과 재구성이라는 강한 극적 요소가 투입되는 것도, 기존 자극의 약화된 효과를 보완하기 위한 프로그램 구조의 진화라 볼 수 있습니다.

3. 간헐적 보상 시스템: 기대를 설렘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심리

심리학적으로 자극에 대한 집착과 설렘의 혼동은 간헐적 보상(intermittent reinforcement) 이론으로도 설명됩니다. 이는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보상이 주어질 때 가장 강한 몰입과 중독을 유도한다는 이론으로, 도박 중독과 SNS 알림, 온라인 게임 등의 메커니즘과 유사합니다.

연애 예능 역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 회차마다 정해진 감정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고, 갑작스러운 출연자 등장, 의도적인 편집을 통한 감정 반전, 고백과 거절의 예측 불가능성이 모두 간헐적 보상의 구조를 구성합니다. 우리는 ‘이번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기대 속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며, 그 감정의 고조를 설렘이라 착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진짜 사랑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구조적으로 다릅니다. 사랑은 반복된 선택과 안정된 신뢰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이며, 끊임없는 불확실성과 자극은 오히려 감정 소모만을 키울 뿐입니다. 결국 연애 예능을 통해 느끼는 설렘은 **설렘의 형태를 한 흥분(arousal)**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실제 감정과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자극 피로와 감정의 둔화: 뇌가 설렘을 거부하는 순간

연애 예능을 장시간, 혹은 반복적으로 시청한 이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질림'입니다. 같은 포맷, 같은 감정 패턴, 유사한 출연자의 감정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처음에는 설렜던 장면도 무뎌지고, 감정 반응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심리적 반응이 아닌, 뇌의 **감각 피로(sensory fatigue)**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자극이 일정 수준 이상 반복되면, 감각세포나 신경회로가 반응 강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피로에 대응합니다. 이는 일종의 생존 메커니즘으로, 뇌가 과도한 도파민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결국, 자극적 장면을 계속해서 경험할수록 뇌는 그 자극을 더 이상 ‘특별한 보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감정적 반응을 억제하거나 회피하게 됩니다. 실제로 연애 예능의 후반부가 되면 시청자뿐 아니라 출연자들 역시 눈에 띄게 무기력하거나 감정적 피로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자극은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감정을 메마르게 만들며 뇌의 회복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5. 감정의 진정성 회복: 자극보다 의미를 추구해야 할 때

지금 우리는 감정을 '빠르고 강하게' 느끼도록 설계된 미디어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연애 예능의 인기 역시 이런 시대적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며, 도파민 중심의 감정 소비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복적 자극으로 인한 감정 피로는 결국 인간 관계와 자아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진짜 설렘은 예측 불가능한 자극보다, 안전한 관계 속에서 자라나는 신뢰와 정서적 친밀감에서 비롯됩니다. 감정의 지속성과 진정성은 ‘극적인 순간’보다는 ‘사소한 반복’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감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자극의 총량이 아닌 감정의 결을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연애 예능을 즐기더라도 그것이 감정의 교과서가 되도록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자극이 아닌 의미에 반응하는 감정의 식별력이 지금 우리에게 더욱 요구되고 있습니다. 자극을 추구할수록 진짜 설렘은 멀어지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조차 잃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감정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러내는 내면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자극적 장면에 쉽게 빠져들고, 또 그만큼 쉽게 지쳐버리곤 합니다.

처음에는 설렘이었지만, 반복될수록 그 감정은 점차 둔감해지고, 결국 ‘왜 더 이상 재미가 없지?’라는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그 신경학적 이유를 통해, 자극만 좇는 감정 소비의 위험성과 피로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지 ‘자극에 익숙해졌구나’라는 자각이 아니라, 진짜 감정과 마주하려는 태도입니다. 감정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느끼고 해석해야 할 경험입니다. 이제는 타인의 감정 서사를 통해 자극받기보다는, 내 감정의 결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